사랑하는 쭈니에게

 

아들 !!!
이렇게 편지를 쓰려니 감회가 새롭네?^^
엄마가 게을러 네 방문에 쪽지도 잘 못 꽂고 했었는데
이런 기회가 생겨 엄마의 속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되어 기쁘구나.

지난 학기말 기말고사를 목전에 두고 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고
네 방에 들어갔더니 너는 어떻게 찾았는지 책장 깊숙히 꽂혀져있던
엄마의 육아일기를 읽고 있더구나.

순간 '시험이 낼모렌데...'하며 화가 나려다 너무나 즐거운 얼굴로
"내가 이랬어? 히히~" "이 때는 왜 엄마가 나를 업고 새벽 세 시까지
서 있었는데?" 하는 통에 엄마도 같이 웃고 오랫만에 일기를 봤었어.

그래!!! 네가 아기였을때 썼던 육아일기를 들여다보니 우리 아들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바라만봐도 눈물나게 감사한 소중한 존재였구나~
세월이 흐르고 네가 자라 네게 바라는 게 많아지면서 잔소리가 늘고
늘 칭찬보다는 부족한 면을 짚어줘야 할 것 같은 생각으로 대한 것 같아.

그런데 그 긴 육아일기를 다 읽고 난 네가 엄마에게 "이렇게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숙여 인사했을때 어찌나 고맙고 이쁘고
미안했는지 몰라. 아빠와 그 일을 얘기하다가 잠자고 있는 네 얼굴을
한참 쓰다듬고 나왔던 거 너는 몰랐지?^^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자라서 부모의 고마움을 알아주나 싶어서
한없이 대견스러웠었어~~

물론 그 다음날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시험공부 안 하냐?"잔소리하는
엄마로 돌아갔지만...^^그래도 네가 얘기했잖아?
너는 엄마의 잔소리를 먹고 산다고....엄만 그 말 믿고 열심히
잔소리할까 생각중~~ㅎㅎㅎ

엄마는 네가 해야할 일을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줬음 좋겠어.아무리 바라는 일이라도 자신이 그 일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 일을 이뤄낼 수 없거든.

엄마는 꿈은 하늘에 떠 있는 별이라 생각해.
쳐다만 보면 그냥 아름다울뿐이지만 제대로 알기 위해선
별에 다가갈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처럼
네 꿈을 이루려면 많은 준비와 배움의 시간들이 필요한 것 아닐까?

엄마,아빠의 곁에 건강히 있어주는 자체만으로도 엄마는 늘 고맙고
감사하지만 네가 열심히 이루면서 사는 삶까지 일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단다.

우리집 가훈 기억하지? --최선은 최고를 만든다.

당장에 최고가 되지 않더라도 하는 일마다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가 최고가 될 것이고 최고가 못 되면 또 어때?
후회없이 열심히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거야.
엄마가 세월을 지내놓고 보니 지나간 시절에 좀 더 열심히 했을걸 하는
후회가 남더라구. 울 아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게 엄마맘이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엄마는 영원한 잔소리쟁이겠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 아들이 언제나
최고로  멋지고 최고로 씩씩한 이 세상 최고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주길 바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랑한다 아들아~^^
                 
                                ----늘 쭈니의 해맑은 웃음을 보고싶은 엄마가


2008/09/05 11:56 2008/09/05 11:56

합리적으로 대하는 연습

자꾸 감정적으로 대하게 된다면 엄마 마음의 상처부터 돌아보라


엄마이기 이전에 나도 사람이다. 그래서 노력은 하지만 늘 실수투성이다. 어떤 때는 내 모습에서 놀라움과 함께 무서움을 느낄 때가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문득문득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폭력성을 느낄 때면 나 자신이 두렵기도 하다.
나는 여동생과 남동생이 한 명씩 있다. 대부분 맏이는 사랑도 많이 받지만 동시에 많은 기대를 짊어진다. 그래서 더 의젓해지려 하고 더 사랑받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많이 노력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떼를 쓰지 않게 되었다. 비교적 빨리 어른다워진 것이다.


맏이로 자랐기 때문인지 큰아이와 작은 아이가 싸울 때 작은 아이는 어리다며 무조건 큰아이만 혼내지는 않는다. 단지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직 어른이 아닌데도 어른스럽게 행동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아이가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깨닫기 마련인데, 누군가 옆에서 형이라는 사실을 자꾸 강요하게 되면 아이는 동생을 귀찮아하고 짐스러운 존재로 느끼게 될 뿐이다.
나는 되도록 큰아이가 작은 아이에게 져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서로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지켜봐 주려고 노력한다. 어른이 개입하지 않는 상황에서 큰아이가 스스로 자신이 형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래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다.


어렸을 때 막내 남동생을 안고 찍은 사진이 있다. 동생이라고는 하지만 나보다 머리도 큰 녀석을 내가 이를 악물고 안고 있는 사진이다.
어머니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웃곤 했다. 조그만 녀석이 동생을 안고 있으라는 말에, 그래도 누나라고 이를 악물고 안고 있다며….
그 사진을 볼 때마다 그때 난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나는 힘들다는 소리를 별로 하지 않고 자랐다. 힘든 일에 부딪히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기보다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그런 나를 어머니는 그저 얌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얌전한 아이가 아니었다. 내 안에 들어 있는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지 못해 얌전한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그러다가 나를 진정으로 알아준 4학년 담임 선생님으로 인해 나는 내 색깔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더 이상 얌전한 아이가 아니었다. 남자 아이들과 당당히 싸울 정도로 외향적인 아이가 되었다. 그 때문인지 4학년 겨울 방학 즈음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외국에 나가 살게 되었을 때도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비교적 잘 견딜 수 있는 뚝심을 가질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난 어머니가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내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배우라면 배우고 하라면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것들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맞설 수 있는 힘이 생긴 뒤부터는 즐겁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나는 아이가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억지로 배우게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아이를 키우는 기본 원칙이다.


엄마 안의 상처가 아이를 감정적으로 대하게 만든다


아버지는 반대로 참 자상한 분이셨다. 그리고 자식들을 끔찍이도 사랑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을 위하는 마음이 너무 지나쳤다. 그 때문에 어머니를 비롯해 나와 여동생에게 상처를 준 일이 많았다.
딸 둘을 낳은 뒤 어머니는 아버지의 아들 타령에 우울증까지 겪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막내 남동생이 태어났으니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야말로 금이야 옥이야 키우셨다.
그러나 소중한 아들을 키우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쳐 병원에 가서 머리를 꿰매는가 하면, 누나와 놀다가 누나를 다치게 했다. 문제는 남동생이 다치면 아버지가 모든 가족들을 불러놓고 혼을 낸다는 사실이었다. 매를 들기까지 했는데, 그 매가 보통 매가 아니었다. 가끔 이성을 잃을 정도로 감정적으로 매를 들었다.

나는 왜 매를 맞아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동생이 다친 것이 우리 탓이 아닌데 왜 우리를 때리는지. 그 뒤부터 내게 있어 아버지는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았다. 남동생 역시 예쁘게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매를 안 들게 되고, 어머니 또한 다 커버린 자식을 때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매를 들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몸에 폭력적인 잔인함이 숨어 있었다. 화가 나면 나도 모르게 무엇인가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것이다.
아이가 심한 억지를 부리며 말을 듣지 않을 때 나도 모르게 매를 들고 때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때마다 나는 당황하고 놀랐다.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은 결국 내 경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조심한다. 이성을 잃지 않도록. 아이 때문에 화가 났을 때는 심호흡을 여러 번 한다.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나면 우선 그 자리를 피한다. 그런 뒤 내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진짜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 다음 아이와 함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매보다 마음에 입은 상처를 아이는 더 오래 기억한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예쁘고 사랑스러울 때도 있지만 너무 귀찮고 힘들 때도 있다. 아이가 힘들게 할 때면, 대화를 통해 아이를 설득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매를 들거나 위협적인 말을 사용해 그 상황을 되도록 빨리 끝내려고 하는 유혹을 느낄 때가 많다. 그리고 가끔 이 유혹에 져서 소리를 치거나 매를 들기도 한다.

큰아이가 어렸을 때는 매도 자주 들었지만, 아이에게 “엄마는 나를 미워해서 때린다”는 말을 듣고부터는 매를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이는 맞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엄마나 아빠가 또 때릴지도 모르니까 무섭다”는 말을 할 때는 참으로 마음이 착잡하기도 했다.
큰아이가 놀이방에 다닐 때다. 놀이방에 맡기고 돌아 나오는데 뒤에서 아이가 이렇게 물었다.
“나 데리러 올 거죠?”
순간 아이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놀랐다.
“준영아, 엄마가 안 데리러 올까봐 겁나?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엄마 말 안 들어서 놔두고 간다고 했잖아요”

언젠가 아이를 데리고 야외로 놀러 갔다가 남편과 내가 장난삼아 “말 안 들어서 준영이는 놔두고 와야겠다”고 했는데, 아이는 그 말을 기억하고 헤어질 때면 혹시 자기를 데리러 오지 않을까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내가 미처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보지도 않고 내뱉은 말 때문에 아이가 얼마나 많이 상처받고 불안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 앞에서는 찬 물도 못 마시고, 말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어른들의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다.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했을 때는 솔직히 사과하라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엄마 자신의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 나는 엄마들에게 늘 이렇게 권한다.
여유를 내기 어렵더라도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엄마 혼자 있는 시간을 마련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피곤함으로 인해 그 짜증의 독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진다고.
어릴 때 나 역시 동생들을 돌보는 것이 싫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 역시 큰아이에게 동생을 부탁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 큰아이의 능력만큼 작은 아이를 돌보게 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 이상을 요구할 때가 있다.
작은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동생을 잘 보지 못했다고 큰아이를 혼낸다. 그러면 큰아이는 억울하다고 운다. 마치 내 어린 시절 다친 남동생 때문에 나와 여동생이 아버지에게 매를 맞았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나 자신이 좀 여유가 있는 날은 아이에게 너그럽게 대한다. 물론 그렇지 않는 날이면 큰아이를 다그치고 만다.
“너는 그런 것도 못하냐? 엄마가 잠깐 쉴 때 그런 것 좀 제대로 도와주면 안 되니?”
명색이 자녀 교육 전문가라는 사람이 아이의 자존감만 떨어트리는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한바탕 퍼붓다가 어느 순간 ‘아차!’하면서 이성을 되찾는다. 그리고는 서툰 엄마 노릇에 스스로에게 또 한번 실망하고 만다.


오랫만에 네 식구가 저녁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는 작은 아이를 안고 있었고 남편은 짐을 잔뜩 들어야 했기 때문에 큰아이에게 핸드백을 챙기라고 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보니 큰아이 손에 핸드백이 없었다.
나와 남편은 약속이나 한 듯 큰아이를 몰아붙였다. 그것도 제대로 못 챙기느냐, 이야기를 하면 잘 듣지 무슨 딴생각을 하느라 핸드백을 놓고 왔느냐 등등. 큰아이는 금방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우는 아이를 보고 남편은 사내 녀석이 운다고 또 몰아 세웠다. 엘리베이터 안은 금세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잠시만 생각해 보면, 아이를 다그친다고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야단친다고 아이의 손에 갑자기 핸드백이 쥐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잘 챙겼어야지” 하는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오히려 아이에게는 더욱 효과적인 야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한순간 감정을 참지 못해 화를 크게 내고 말았으니 서로 감정만 상한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조금은 생겼다. 그러다 보니 웬만해서는 감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없다. 그렇지만 사람인 이상 가끔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마음을 가다듬고 아이와 대화를 한다. 그리고 솔직히 아이에게 털어 놓는다.

“엄마가 피곤해서 그랬는데, 준영이를 더 실망시켰네. 미안해. 다음에는 준영이가 노력한 것에 대해 더 잘 알아줄게”
이렇게 말하면 아이는 금방 싱긋 웃는다. 그리고 기대 이상의 대답을 하면서 내 불편한 마음을 풀어주기도 한다.
“엄마 쉬어요. 내가 찬영이 잘 봐줄게요”
너무도 고맙고 사랑스러운 아이다. 어찌 보면 어른보다 아이들이 훨씬 더 넓은 마음과 융통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엄마도 사람이다 보니 때로는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너무 자주 그리고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우선 엄마 자신의 마음부터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내 마음 속에 해결되지 않은 깊은 상처가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자꾸만 아이와의 관계를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그야말로 내가 보기 싫어하는, 보고 싶지 않은 깊은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이기 때문에 참으로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 전문 상담자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송선희- 엄마가 된 다음에 시작하는 좋은 엄마연습>
2008/07/07 11:58 2008/07/07 11:58

끝까지 믿어주는 연습

엄마가 아이를 믿어주면 아이는 자신을 신뢰하게 된다


나를 절대적으로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살아가는데 무척 큰 힘이 된다. 아이에게 있어 이런 역할은 대개 부모가 하는 경우가 많다.
위대한 인물들 뒤에는 반드시 그를 믿어준 어머니나 아버지가 있었다.
그들은 그 믿음을 져버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다. 그 결과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상담을 통해 알게 된 것도 이러한 믿음이라는 힘이다.
누군가 자신을 믿어주고 있다는 느낌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금방 바뀌기 시작한다.


욕심을 버리면 아이를 믿을 수 있게 된다


처음 큰아이 준영이가 내게 왔을 때는 다른 어떤 기대도 없었다. 그저 건강하기만 바랐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면서 욕심과 기대도 커져갔다.
그런 만큼 아이에 대한 믿음은 줄어들고 말았다.
지켜만 봐주고 보조자의 역할만 해주어도 잘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도, 늘 못 미더워하고 쫓아다니면서 잔소리를 하고 일일이 확인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
말로는 믿어주는 것 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하면서도 실천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을 통해 ‘과연 아이를 믿어준다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를 말하는 것일까?’하는 반문을 해보기도 했다.

믿기 때문에 지켜보는 것과 방임과는 다르다. 힘들고 귀찮을 때 아이를 믿는다는 핑계로 그냥 내버려두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방임이다. 말 그대로 아무런 계획도 대책도 없는 상태에서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아이를 믿어서가 아니다.

믿기 때문에 지켜보는 것은, 아이가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고, 힘들어할 때 도움의 손길을 뻗어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아이 자신이 갈 길을 스스로 정하고, 부모는 아이가 그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믿어주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부모와 아이 사이의 믿음이고, 이 믿음으로 인해 아이는 큰 용기와 자신감을 얻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게 된다.


믿는다는 것은 기다려주는 것이다


큰아이가 처음 기어다니기 시작했을 때 나는 너무나 불안했다. 소중하기만 한 아이가 어떻게 되지나 않을까 늘 전전긍긍했다. 그러다 보니 한순간도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쫓아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언제까지 아이의 뒤를 쫓아다니며 봐줄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강해지자 그리고 믿자. 이 아이가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자. 믿고 지켜보자.
내가 계속 불안해한다면, 그 불안함이 아이에게도 전해질 것이다. 불안해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보다는 자신감 있는 아이로 키우자’

그 뒤부터 나는 아이가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지켜보았다. 또 놀다가 다쳤을 때도 “그래, 아프겠구나, 약 바르자”하면서 아이가 보이는 반응 이상의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는 놀다가 다쳐도 유난스럽게 굴지 않았다. 그리고 5살 이후에는 스스로 약을 바를 수 있도록 연고와 반창고를 손 닿는 곳에 두었다. 그러자 스스로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기도 했다. 너무 크게 다쳤을 때만 도움의 손길을 원했다.

다친 부위에 스스로 약을 바를 줄 알게 되자 위험한 일에 대해서는 미리 피할 줄도 알았다. 그래서 그런지,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으로 봐서는 일찍 인라인을 배우려 했을 텐데 충분한 자신감이 생기면 배우겠다고 해서 7살이 넘어 인라인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자 아이의 말대로 비교적 쉽고 빨리 배웠다.

이런 경험을 통해 뭐든지 필요 이상으로 일찍 가르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더욱 굳혔다. 아이 스스로 자신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가르쳐주자 더 열심히 배우고 더 빨리 배웠기 때문이다.


엄마가 서둘러 아이를 몰아가거나 쓸데없는 걱정을 미리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먼저 아이의 능력이나 생각을 믿어주자.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미리부터 어른이 선택해 주고 결정해주면 아이는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아이의 선택을 믿어줄 때 선택 능력이 자란다


나는 언제나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는 편이고, 아이의 생각대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딱 한 번 이런 원칙을 어기고 내 생각대로 끌고 가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그것은 영어 공부를 가르칠 때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영어만큼은 일찍 배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아이에게 되도록 빨리 영어라는 세계를 경험시켜 주고 싶었다.
그래서 준영이를‘꼬드겨’영어 학원에 보냈다. 그런데 도통 영어에 관심이 없었다. 학원에만 가면 놀고 싶어했다.

아이들 영어 수업이라는 것이 대개는 놀이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재미있어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준영이는 달랐다. 놀이도 어느 정도 영어를 알아야 할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영어를 전혀 공부하지 않았으니 놀이인들 재미있을 리 없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준영이에게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 보았다. 아이는 당연히 다니기 싫다고 했다. 어떤 틀 속에 갇혀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다. 나는 과감하게 영어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하고 싶으면 언젠가는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로 했다.
준영이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하기 싫은 것이 무엇인지 비교적 정확하게 아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때문에 아이를 믿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억지로 시키기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필요에 의해 선택할 수 있도록 지켜보기로 했다.
물론 내 선택이 옳은지 또는 그른지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어쩌면 평가할 필요조차 없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이의 행복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를 놓고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좋아하지 않지만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하여 삶이란 좋은 것만 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다소 어려운 이야기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 아이가 그 말의 의미를 되씹어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송선희-엄마가 된 다음에 시작하는 좋은 엄마 연습>

2008/07/07 11:54 2008/07/07 11:54

말대꾸를 받아들이는 연습

말대꾸는 아이의 지적 성장을 가늠하는 잣대


어렸을 때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말대꾸 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맞는 말을 하면 어른들은 늘 그렇게 말했다.

“어른이 말하는데 왜 말대꾸야! 무조건‘네’라고 대답해야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나는 이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어른들은 내 생각을 들으려 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내겐 참 좋은 아버지가 있었다.
늘 자상하셨고, 가족의 의견을 존중해주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보다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적어도 “어른이 부르면 무조건 ‘네’라고 대답하고 바로 움직여야지, 왜 대답을 바로 안 하냐?” 같은 말은 듣지 않고 자랐기 때문이다.

말대꾸는 자신만의 논리를 갖춰가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신호다


큰아이가 자라 말귀를 알아듣게 되자 남편은 아이에게 이것저것 많은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공부에 관해서는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따로 요구할 만한 것이 없었지만, 어른이 말을 하면 바로 대답해야 한다거나, 어른이 말을 하는데 ‘왜?’라고 토를 달면 안 되고, 말이 떨어지면 바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들이었다. 내게는 그런 요구들이 이상하게 보였다.

큰아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왜 아빠는 안 하면서 나보고만 하라고 해요?” 하거나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을 왜 내게 시켜요? 자기 일은 스스로 하라고 했잖아요!” 하면서
내가 어렸을 때 어른들이 말대꾸라고 하던 그런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하면서 아이와 남편은 자주 실랑이를 벌였다.
재미있는 것은, 아이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내가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도 나 역시 어느 순간 힘으로 또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누르려 했던 일들이 많았다.
‘너는 아이고 나는 어른이니 무조건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단지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의 생각을 무시하고 무조건 자신의 말에 따르라고 요구한다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남편은 아이와의 실랑이가 잦아지면서 뭔가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리고는 ‘자식이 무섭다’는 말도 하고, 옛말 그르지 않다면서 ‘자식 무서워서라도 내 몸가짐을 잘 해야겠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밥 먹고 난 뒤 빈 그릇을 설거지통에 갖다 놓거나, 벗은 옷을 빨래통에 갖다 넣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점점 자라자 남편은 술을 마시며 늦게까지 놀다가도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면서 일찍 들어오려고 노력했다. 아내의 백 마디 잔소리보다 아들의 커다란 눈망울이 더 무서웠던 게다.
참 고마웠다. 그냥 아이 말이라고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스스로 노력하는 남편의 마음가짐이 내심 고마웠고,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 아빠의 모범을 본받아 원만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사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족이지만, 따지고 보면 가장 어려워하고 예의를 지켜야 할 사람이 가족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끼리 어려워하지 않아도 별 문제 없이 살아왔잖아?” 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번 되돌아보자. 진짜 문제가 없었는지.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억지를 부리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너만은 나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내가 될 수 없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 부모와 자녀 사이는 더욱 그렇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고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로봇도 아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면서 동시에 가장 존중해야 할 존재들이다. 그런데 부모들은 이런 사실을 자주 잊고 산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또 가족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하고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한다.


예의있는 말대꾸를 권장하라


아이를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면, 아이는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힘센 사람에게는 굴복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군림하려는 성향을 갖게 된다.
진정한 인간관계의 참 모습을 경험하기도 전에 힘의 원리를 배우게 하는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아이가 자신의 의사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가 존중받을 수 있는 곳에서 자라고 있다는 증거다. 또한 높은 자존감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는 언제나 정확한 판단력으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외부의 압력에 의해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자주적인 사람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아이들의 말대꾸를 권장하는 사람이다.
사실 어른들이 ‘말대꾸’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른들의 말에 토를 단다는 뜻으로 버릇없어 보이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제대로 된 대화 방법을 배워보지 못한 것에서 생기는 오해다.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고 우긴다든지, 남의 의견은 무조건 틀렸다고 하는,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자기 주장을 많이 경험한 이전 세대에서는 자기 주장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 아이의 자기 표현은 말대꾸로밖에 보이지 않게 된다.


상담 프로그램 중에 ‘자기주장 훈련’이라는 것이 있다.
자기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이다.
현대인들은 똑소리나게 자기 표현을 하면서 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자기 표현을 잘 하고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얘기하다 보면 고집이 세다느니 건방지다느니 하는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되도록 표현을 안 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속병이 들거나 쌓여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해 문제가 커지고 나면 상담실을 찾아와 자기 주장 훈련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프로그램을 통해서라도 자기 표현 훈련을 하는 사람들은 대화의 패턴을 새로 배움으로써 대인관계에 많은 도움을 받지만, 이런 것이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은 계속 병을 안고 산다.

문제는 자기 자신만 병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이런 병을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힘이 센 사람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는 다시 힘이 약한 사람한테로 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악순환이 계속 되풀이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이들의 자기 표현을 말대꾸라 하여 원천적으로 막아버리는 것은 바로 이런 악순환에 해당한다. 말대꾸를 못하게 해서 자기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면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말대꾸를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말대꾸를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아이의 정당한 자기 표현으로 생각해주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여기에 아이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때 태도상 주의해야 할 점만 가르쳐주면 된다.


아이의 질문은 아이의 수준에서 이해해야 한다


준영이는 평가를 하려 드는 아빠보다는 엄마를 더 편안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게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쏟아놓는다.
“혼낼 거지요?” 하면서도 자신이 잘못한 이야기를 먼저 한다든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 놀면서 친구들과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자기 전에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나는 아이의 말에 “그래?”,“응”, “그렇구나!” 하는 반응을 보이면서 가만히 들어준다.
그러면 아이는 더욱 신나하며 자신의 속마음까지 털어 놓는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나는 아이의 하루를 엿보기도 하고, 아이의 속마음을 읽기도 한다.
요즘에는 남편도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아빠와 별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아빠와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이들과 가까워지려고 부단히 노력한 남편의 성과물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의 성장 배경을 보면 부모님과 오손도손 이야기를 하면서 자란 경우는 참 드물다. 그러다 보니 아빠가 되어도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이 서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엄마가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어느 날 사극 드라마를 보고 있던 큰아이가 내용 이해가 안 되는지 아빠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자 남편은 재미있게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말도 안 되는(자기 생각에) 질문을 하니까 화가 났는지 “너는 그것도 모르냐? 생각 좀 하고 물어봐라”는 식으로 대꾸하고 말았다.
큰아이는 진정 궁금해서 물어보았는데, 어른의 눈에는 너무 뻔한 것이다 보니 남편은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아직 아이의 사고 능력이 어른만 못하다는 것을 남편이 잠시 잊어버렸던 모양이다.

가끔 부모들은 잊어버리는 것이 있다.
아이들의 사고 능력이 어른과 비슷해져 말귀를 잘 알아듣고, 철이 들어 비교적 완전한 논리를 갖추어 말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중학생 정도는 되어야 하며,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고등학생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런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다 보니 늘 자신의 입장에서 아이의 질문을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질문이 엉뚱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게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는 나름대로 진지하게 물어 보았는데 부모가 해주는 답변은 자상한 설명이 아니라 면박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면박이 자주 되풀이되면 아이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게 된다.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화가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상황이 굳어지면 아이는 마음의 빗장까지 닫아버리게 된다. 그때는 아무리 부드러운 말로 아이에게 접근해도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늦어버린 경우가 많다.
부모는 아이의 말에 늘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자녀와 대화를 많이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다. 이것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타고 나는 것도 아니다. 부단한 노력으로 길러지는 일종의 기술이다.


사극 드라마가 끝나고 큰아이는 자기 방으로 갔다. 나는 남편에게 넌지시 말한다.
“아직 어린아이니까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큰아이 방으로 가서 부드럽게 말해준다.
“네가 만화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동생이나 엄마가 자꾸 말 시키면 너는 어떻겠니? 짜증나겠지?”
이렇게 물어봐 줌으로써 아빠의 퉁명스런 대답에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를 아이의 마음을 풀어준다.


대한민국 엄마들은 아이와 남편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느라 너무 힘들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남편을 포함해서‘애 몇을 키운다’는 말이 우스개처럼 떠돌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로 가정 생활을 하다 보면 남편이 아주 덩치가 큰아이로 생각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여자들의 타고난 배려심과 모성애로 아이들과 아빠에게 부드러운 대화법을 선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송선희- 엄마가 된 다음에 시작하는 좋은 엄마연습>

2008/07/07 11:50 2008/07/07 11:50

마음공부

보석상자 2008/07/07 11:39
초심 初心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면 바른 생각과 판단이 보인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로 돌아가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처음 만났던 때로 돌아가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처음에는 좋아서 그 일을 했고, 좋아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그 일과 그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면 원인이 어디 있을까요?
그 일과 그 사람이 변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 일과 그 사람을 바라보는 내 시각이 변했기 때문일까요?
초심
初心으로 돌아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습니다.

ps; 김미경코치님의 코칭의 출발점강의와 일맥상통하는군요^^코칭을 하다가 벽에 부딪히면
      코칭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야한다고 하셨는데...

용서 容恕

용서는 스스로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자 사랑


남을 용서해 줄 때,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사람은 용서 받는 사람이 아니라 용서 하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용서와 함께 온갖 분노와 미움과 질투에서 해방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자신이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자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돈이 많지 않아서, 지위가 높지 않아서, 얼굴이 잘 나지 못해서, 많이 배우지 못해서 행복하지 못 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참으로 우리의 행복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은 적은  돈도, 낮은 지위도, 못생긴 얼굴도, 많이 하지 못한 공부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과 분노와 질투입니다. 이들이 우리의 행복에 큰 걸림돌로 버티고 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이러한 분노와 미움과 질투를 없애기만 하면 순식간에 우리는 행복해집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용서 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나는 잘했고 너는 잘못했으니 잘 한 내가 잘못한 너를 용서하겠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참된 용서는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용서가 되어야 합니다. 용서를 통해 가장 행복해지는 사람이 자기 자신인 만큼 이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모든 용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용서이고, 자기 자신과의 화해입니다.

미움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뿌리 없는 허상


   어떤 여인이 찾아와 이웃의 누군가가 미워죽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여인에게 언제적 이웃이 미운지 물어 보았습니다. 여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무슨 말인지 궁금해 했습니다.

“사람은 늘 바뀌기 마련인데, 당신이 미워하는 그 이웃은 언제 적 사람입니까? 어제의 사람이라면 밤새 달라졌을 수 있으니 이제는 그만 미워하시고, 오늘 아침의 사람이라면 그 사이 또 바뀌었을 수 있으니 그만 미워하시고, 방금 전의 사람이라면 앞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니 그만 미워하십시오.”

사람은 시시각각으로 바뀝니다. 어제와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모습으로든지 바뀌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사실 참 어리석은 것입니다.
미워하는 감정은 어느 고정된 시점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생겨난 것인데, 사람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늘 바뀌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상대방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바뀝니다. 따라서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아무 뿌리 없는 허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목 耳目

 귀로 듣지만 귀로 듣지 않고, 눈으로 보지만 눈으로 보지 않는다


스승이 제자들 앞에서 주먹 쥔 손을 들어 보이며 물었습니다.


“무엇이 이 든 손을 보는가?”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눈으로 봅니다.”


“눈으로 본다면 캄캄한 밤에도 보이는가?”


“밤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낮에만 보인다면, 어찌 장님은 눈이 있어도 낮에 보지를 못하는가?”


그리고는 손으로 탁자를 크게 치고는 다시 물었습니다.


“이 소리는 무엇이 들었는가?”


“귀로 들었습니다.”


“귀로 들었으면, 왜 방금 죽은 사람은 귀가 있는데도 못 듣는가?”


눈으로 보는 것 같지만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보는 것은 오직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이 바르고 깨끗하면 모든 것이 바르고 깨끗하게 보이고, 마음이 비뚤어지고 깨끗하지 못 하면 모든 것이 비뚤어 보이고 더럽게 보이는 법입니다.


듣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늘 듣는 말인데 어떤 날은 기분 좋게 들리고 어떤 날은 기분 나쁘게 들리기도 합니다. 만약 귀로 듣는다면 똑같은 소리는 늘 똑같은 소리로 들려야 할 것입니다. 귀로 듣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마음으로 듣기 때문에, 마음 상태에 따라 늘 다르게 들리는 것입니다.


출처 ; 혜거스님과 함께하는 마음공부 -가시가 꽃이 되다
2008/07/07 11:39 2008/07/07 11:39

제2기 심화교육-두산아트센터


6월 27일 금요일 드뎌 심화교육을 받았다.
강사쌤은 너무나 이지적이고 차분하신 김미경쌤이셨다.
코치들은 다 이렇게 지적이고 잘 생기셨을까?ㅎㅎ
지난 1,2차 워크샵을 진행해주신 쌤도 그러셨는데...

하루 온종일 교육을 받는다 하니 부담감도 없지않았다.
그런데 하루가 어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갔으니
김미경 코치님의 수완이 대단하신 것 같다.

사실 오후엔 졸렸다.ㅋㅋ 그래서 얻은 결론!!!
'아이들 하루종일 수업받느라 힘들겠구나!....'
나는  왜 항상 이렇게 체험을 해야 이해가 들어가냐고요?ㅜㅜ
학교다닌지가 넘 오래되어 힘들었던 걸 다 까먹은 탓이다.

여하튼 Coaching Leader 교육은 지난 시간의 복습으로 시작됐다.

-어떤 엄마가 코칭맘인지?
-경청과 칭찬의 비법은?
-실천습관 3대 법칙은?

다들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으며 복습을 했다.
다시 언급하시는 걸 보면 중요한 것이니 밑줄 쫘~악!!

코칭의 출발점은 무엇보다 '신뢰' 라고 한다.
우리 엄마들의 문제점은 '신뢰'가 기본이 안 되어있는데
'스킬'을 쓰려하는데 있다고 하니 염두에 둘 일이다.

심화교육의 내용은 크게 나눠 다섯가지로 나눠지는데
다음과 같다.
1. 신뢰받는 엄마들의 감정코칭 기술
2. 발견질문과 코칭 프로세스
3. 재능발견과 코칭 스타일
4.학습코칭 툴 박스 활용
5. 코칭계획 수립         

각 항마다 자세한 내용은 천천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정리되는 동안 아이와의 신뢰회복에 전력투구할 작정이다.
요새 시험때문에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말이다.ㅋㅋㅋ
2008/07/02 17:20 2008/07/02 17:20

뮤지컬하우스에서...


두둥~~~!!
2차 워크샵은 약수동 뮤지컬하우스에서 열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주일동안 쓴 칭찬일기~숙제검사도 맡고...ㅎ
항상 아이것 검사할줄만 알다가 내가 맡으려니 엄청 쑥스~~^^;;
애들도 숙제검사할때 이런 기분이겠구나~
설렘반 걱정반...잘 했다 칭찬들을까? 잘 못했다 지적받을까?
이제부턴 아이가 해 놓은 것 보고 "이~게 뭐니?" 상처주지 말아야징^^

첨에 들었던 '병아리VS 후라이' 얘기 100% 공감이 갔다.
스스로 깨고 나와야 병아리가 될 수 있다는 거......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병아리와 후라이의 차이를 아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생명이 있고 없고의 차이같은 얼핏 생각할 수 있는 차이를
대다가 결국 스스로 깨느냐 남이 깨느냐의 차이를 알아낸다.
"역쉬 엄마보단 빨리 생각해내니 우리 아들 최고다!"
칭찬 한 방 날려주고....^^

엄마 오늘은 뭘 배웠냐고 묻기에 이때다 싶어
학습습관을 잡는데 세 가지 실천법칙이 있더라고 하니 뭐냔다.
1. 바람개비법칙
2. 아이콘법칙
3. 낙숫물법칙
                 이라니까 "에이~그게 뭐야?단박에 핀잔 날아오고...ㅠ
그러나... 이 엄마의 친절한(?) 설명에 아이도 수긍하며 끄덕끄덕...
오늘의 강의는 아~주 성공적인 듯하여 내친김에 기말고사 계획표를
짜지 않겠냐고 구슬렀는데
"지난번에 짰는데 망했잖아? 똑같은 것 같드만 뭘.요번엔 그냥 해볼라구~"
요런 얌통머리없는 대꾸가 돌아온다.ㅜㅜ
맘 같아선 꿀밤 몇대 안겨주고 싶지만 찬찬히 생각해서
함 해보자~하고 돌아선 나... 한 템포 죽이길 잘 한 것 같다.ㅋㅋ

6월 27일엔 3차 워크샵이 있다고 한다.
한 조의 조장과 부조장만 시켜준다고 하네?
같이 들었던 모든 분들이 함께 들었으면 좋으련만...
다른 조들은 서로 조장하려고 하드만
우리조는 서로 안 하겠다 하니 어영부영 내가 조장이 되었다^^;;
열심히 듣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3차 워크샵을 기대해본다.



2008/06/16 10:05 2008/06/16 10:05

우연하게 아니, 우연찮게 백점엄마 워크샵 공지를 보았다.
아이가 공부에 도움을 받는 두산동아 사이트에 들렀다가...

늘 아이에 관해 주파수를 맞추고 있는 외동아이의 엄마로
13년을 살다보니 본의아니게 아이를 길들이고 살아오지 않았나
새삼 반성하며 온갖 자녀교육책을 섭렵하던 끝에 만난
단비같은 소식이었다.

집에서 과히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열려 좋았고
직접 강의를 들으면 허구헌날 책으로 보며 느끼던
갈증이 해소될거라 믿었기에 주저없이 신청하고
6월 3일 오후에 두산아트센터로 향했다.

건물은 두산아트센터로 변모한 모습이 넘 멋지다.
연강홀로 뮤지컬공연 보러 여러번 갔었는데
너무 세련되게 변해 잠~깐 구경하느라
처음 서울상경한 촌사람처럼 허둥댔다. ㅎㅎ

2층에 도착하니 교과서 상설판매장이 눈에 띈다.
이따 끝나고 아이 수학익힘책 두 권 사가야겠다고 다짐하며
워크샵장에 들어가 찐~한 원두커피 한 잔 마신다음.....

강사쌤이 조별로 강의도 듣고 과제도 진행한다고
짝을 지어 앉으라셔서 푸근해보이는 분들과 함께 했다.

드뎌 수업 시작~!!!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있었고 새삼 가슴을 치는
찔리는(?) 내용도 있었다.

강사쌤을 따라 하면서 새록새록 가슴에 새긴 말...
'내 아이를 진심으로 칭찬하자'
숙제로 내 주신 '하루에 세 번씩 칭찬하기'는
교재 한 귀퉁이에 적어가며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ㅋㅋ

알고는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내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을 따스하게 할 수 있었다는 점, 그것이
다음 주 2차 워크샵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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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5 14:57 2008/06/05 1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