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으로 대하는 연습
자꾸 감정적으로 대하게 된다면 엄마 마음의 상처부터 돌아보라
엄마이기 이전에 나도 사람이다. 그래서 노력은 하지만 늘 실수투성이다. 어떤 때는 내 모습에서 놀라움과 함께 무서움을 느낄 때가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문득문득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폭력성을 느낄 때면 나 자신이 두렵기도 하다.
나는 여동생과 남동생이 한 명씩 있다. 대부분 맏이는 사랑도 많이 받지만 동시에 많은 기대를 짊어진다. 그래서 더 의젓해지려 하고 더 사랑받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많이 노력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떼를 쓰지 않게 되었다. 비교적 빨리 어른다워진 것이다.
맏이로 자랐기 때문인지 큰아이와 작은 아이가 싸울 때 작은 아이는 어리다며 무조건 큰아이만 혼내지는 않는다. 단지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직 어른이 아닌데도 어른스럽게 행동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아이가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깨닫기 마련인데, 누군가 옆에서 형이라는 사실을 자꾸 강요하게 되면 아이는 동생을 귀찮아하고 짐스러운 존재로 느끼게 될 뿐이다.
나는 되도록 큰아이가 작은 아이에게 져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서로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지켜봐 주려고 노력한다. 어른이 개입하지 않는 상황에서 큰아이가 스스로 자신이 형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래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다.
어렸을 때 막내 남동생을 안고 찍은 사진이 있다. 동생이라고는 하지만 나보다 머리도 큰 녀석을 내가 이를 악물고 안고 있는 사진이다.
어머니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웃곤 했다. 조그만 녀석이 동생을 안고 있으라는 말에, 그래도 누나라고 이를 악물고 안고 있다며….
그 사진을 볼 때마다 그때 난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나는 힘들다는 소리를 별로 하지 않고 자랐다. 힘든 일에 부딪히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기보다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그런 나를 어머니는 그저 얌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얌전한 아이가 아니었다. 내 안에 들어 있는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지 못해 얌전한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그러다가 나를 진정으로 알아준 4학년 담임 선생님으로 인해 나는 내 색깔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더 이상 얌전한 아이가 아니었다. 남자 아이들과 당당히 싸울 정도로 외향적인 아이가 되었다. 그 때문인지 4학년 겨울 방학 즈음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외국에 나가 살게 되었을 때도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비교적 잘 견딜 수 있는 뚝심을 가질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난 어머니가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내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배우라면 배우고 하라면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것들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맞설 수 있는 힘이 생긴 뒤부터는 즐겁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나는 아이가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억지로 배우게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아이를 키우는 기본 원칙이다.
엄마 안의 상처가 아이를 감정적으로 대하게 만든다
아버지는 반대로 참 자상한 분이셨다. 그리고 자식들을 끔찍이도 사랑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을 위하는 마음이 너무 지나쳤다. 그 때문에 어머니를 비롯해 나와 여동생에게 상처를 준 일이 많았다.
딸 둘을 낳은 뒤 어머니는 아버지의 아들 타령에 우울증까지 겪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막내 남동생이 태어났으니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야말로 금이야 옥이야 키우셨다.
그러나 소중한 아들을 키우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쳐 병원에 가서 머리를 꿰매는가 하면, 누나와 놀다가 누나를 다치게 했다. 문제는 남동생이 다치면 아버지가 모든 가족들을 불러놓고 혼을 낸다는 사실이었다. 매를 들기까지 했는데, 그 매가 보통 매가 아니었다. 가끔 이성을 잃을 정도로 감정적으로 매를 들었다.
나는 왜 매를 맞아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동생이 다친 것이 우리 탓이 아닌데 왜 우리를 때리는지. 그 뒤부터 내게 있어 아버지는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았다. 남동생 역시 예쁘게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매를 안 들게 되고, 어머니 또한 다 커버린 자식을 때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매를 들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몸에 폭력적인 잔인함이 숨어 있었다. 화가 나면 나도 모르게 무엇인가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것이다.
아이가 심한 억지를 부리며 말을 듣지 않을 때 나도 모르게 매를 들고 때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때마다 나는 당황하고 놀랐다.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은 결국 내 경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조심한다. 이성을 잃지 않도록. 아이 때문에 화가 났을 때는 심호흡을 여러 번 한다.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나면 우선 그 자리를 피한다. 그런 뒤 내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진짜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 다음 아이와 함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매보다 마음에 입은 상처를 아이는 더 오래 기억한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예쁘고 사랑스러울 때도 있지만 너무 귀찮고 힘들 때도 있다. 아이가 힘들게 할 때면, 대화를 통해 아이를 설득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매를 들거나 위협적인 말을 사용해 그 상황을 되도록 빨리 끝내려고 하는 유혹을 느낄 때가 많다. 그리고 가끔 이 유혹에 져서 소리를 치거나 매를 들기도 한다.
큰아이가 어렸을 때는 매도 자주 들었지만, 아이에게 “엄마는 나를 미워해서 때린다”는 말을 듣고부터는 매를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이는 맞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엄마나 아빠가 또 때릴지도 모르니까 무섭다”는 말을 할 때는 참으로 마음이 착잡하기도 했다.
큰아이가 놀이방에 다닐 때다. 놀이방에 맡기고 돌아 나오는데 뒤에서 아이가 이렇게 물었다.
“나 데리러 올 거죠?”
순간 아이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놀랐다.
“준영아, 엄마가 안 데리러 올까봐 겁나?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엄마 말 안 들어서 놔두고 간다고 했잖아요”
언젠가 아이를 데리고 야외로 놀러 갔다가 남편과 내가 장난삼아 “말 안 들어서 준영이는 놔두고 와야겠다”고 했는데, 아이는 그 말을 기억하고 헤어질 때면 혹시 자기를 데리러 오지 않을까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내가 미처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보지도 않고 내뱉은 말 때문에 아이가 얼마나 많이 상처받고 불안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 앞에서는 찬 물도 못 마시고, 말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어른들의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다.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했을 때는 솔직히 사과하라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엄마 자신의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 나는 엄마들에게 늘 이렇게 권한다.
여유를 내기 어렵더라도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엄마 혼자 있는 시간을 마련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피곤함으로 인해 그 짜증의 독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진다고.
어릴 때 나 역시 동생들을 돌보는 것이 싫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 역시 큰아이에게 동생을 부탁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 큰아이의 능력만큼 작은 아이를 돌보게 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 이상을 요구할 때가 있다.
작은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동생을 잘 보지 못했다고 큰아이를 혼낸다. 그러면 큰아이는 억울하다고 운다. 마치 내 어린 시절 다친 남동생 때문에 나와 여동생이 아버지에게 매를 맞았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나 자신이 좀 여유가 있는 날은 아이에게 너그럽게 대한다. 물론 그렇지 않는 날이면 큰아이를 다그치고 만다.
“너는 그런 것도 못하냐? 엄마가 잠깐 쉴 때 그런 것 좀 제대로 도와주면 안 되니?”
명색이 자녀 교육 전문가라는 사람이 아이의 자존감만 떨어트리는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한바탕 퍼붓다가 어느 순간 ‘아차!’하면서 이성을 되찾는다. 그리고는 서툰 엄마 노릇에 스스로에게 또 한번 실망하고 만다.
오랫만에 네 식구가 저녁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는 작은 아이를 안고 있었고 남편은 짐을 잔뜩 들어야 했기 때문에 큰아이에게 핸드백을 챙기라고 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보니 큰아이 손에 핸드백이 없었다.
나와 남편은 약속이나 한 듯 큰아이를 몰아붙였다. 그것도 제대로 못 챙기느냐, 이야기를 하면 잘 듣지 무슨 딴생각을 하느라 핸드백을 놓고 왔느냐 등등. 큰아이는 금방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우는 아이를 보고 남편은 사내 녀석이 운다고 또 몰아 세웠다. 엘리베이터 안은 금세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잠시만 생각해 보면, 아이를 다그친다고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야단친다고 아이의 손에 갑자기 핸드백이 쥐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잘 챙겼어야지” 하는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오히려 아이에게는 더욱 효과적인 야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한순간 감정을 참지 못해 화를 크게 내고 말았으니 서로 감정만 상한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조금은 생겼다. 그러다 보니 웬만해서는 감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없다. 그렇지만 사람인 이상 가끔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마음을 가다듬고 아이와 대화를 한다. 그리고 솔직히 아이에게 털어 놓는다.
“엄마가 피곤해서 그랬는데, 준영이를 더 실망시켰네. 미안해. 다음에는 준영이가 노력한 것에 대해 더 잘 알아줄게”
이렇게 말하면 아이는 금방 싱긋 웃는다. 그리고 기대 이상의 대답을 하면서 내 불편한 마음을 풀어주기도 한다.
“엄마 쉬어요. 내가 찬영이 잘 봐줄게요”
너무도 고맙고 사랑스러운 아이다. 어찌 보면 어른보다 아이들이 훨씬 더 넓은 마음과 융통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엄마도 사람이다 보니 때로는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너무 자주 그리고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우선 엄마 자신의 마음부터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내 마음 속에 해결되지 않은 깊은 상처가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자꾸만 아이와의 관계를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그야말로 내가 보기 싫어하는, 보고 싶지 않은 깊은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이기 때문에 참으로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 전문 상담자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송선희- 엄마가 된 다음에 시작하는 좋은 엄마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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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cked from 당신이 원하는 한가지 변화 2008/11/09 14:03 삭제
같은 자식이지만 아들과 딸은 참 다른 것 같다.아빠들은 대개 아들은 좀 안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성장과정을 기억하고 있으니 '녀석도 남잔데 뭐 크게 다르겠나' 하는 마음이 있다.때론 이런 어줍잖은 자신감이 화를 부르기도 한다. 아들이 자기와 다르다는 걸 발견하면 화들짝 놀라 당황하게 되고 곧바로 시정조치(?)할 것을 지시 명령한다.아들 입장에서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 아빠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요즘 아이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아빠...